|
|
 |
제목 : 설인귀 (경기도) |
조회수 : 4,013 |
경기도 설인귀
적성에는 설인귀에 대한 전설이 많다.
이는 설인귀가 실제 인물이요, 또 적성에서 고구려 원정을 한 장수이므로 자연히 많을 수 밖에 없다.
기록상으로 설인귀사, 설인귀 산신(山神)추대, 설인귀비(몰자비-沒字碑), 글안병의 퇴각 등에서 설인귀의 전설을 볼수있다.
설인귀는 본래 지금의 적성면 주월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힘이 장사이므로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지냈다.
설인귀가 얼마나 힘이 셋던가?
한번은 상산 김씨의 묘를 쓰는데 묘자리에 아름드리 나무가 즐비하여 당시의 권세로 각 동리에 배당하여 그 나무를 캐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주월리에 배당된 나무는 설인귀가 자청하여 자기가 캐냈다고 하므로 동리 사람들도 그의 힘센 것은 알고 있는 터라 쾌히 승락하였으나 묘쓸 날이 다가와도 도무지 나무를 캐내지 않고 있었다.
동리사람들이 걱정하고 독촉하니 설인귀가 술 세독을 준비하라하고 당일이 되자 술 세독과 돼지 한 마리를 먹고는 나무를 뽑아내는데 아름드리 나무를 순식간에 뽑아버렸다고 한다.
설인귀가 한번은 지금의 율포리 앞 강 석벽에 이르렀더니 석벽이 갈라지면서 용마(龍馬)가 뛰어나오는게 아닌가, 설인귀가 그 용마를 잡으니 용마는 가만히 있었다.
또 백운리(白雲里)에서 밭을 갈던 농부가 쟁기에 걸리는 것을 캐어보니 큰 궤가 나오는데 그속에 갑옥, 투구, 칼이 들어 있어서 설인귀 이외에는 입을 사람이 없기로 설인귀가 차지하였다.
이리하여 용마와 갑옷, 투구, 칼을 얻은 설인귀는 적성일대를 돌아다니며 훈련을 하였다.
그의 말발굽이 가장 많이 지나간 지금의 마지리(馬智里)는 실은 마제리(馬蹄里)였던 것이다.
(이것은 [여지승람]에도(馬蹄里)로 기록되었다)
또설마치 계곡에는 설인귀가 가지고 놀던"공기돌"이 6.25전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감악산 산정에 비가 남아 있는데 글씨가 다 지워져서 알 수가 없으므로 이를 몰자비(沒字碑)라 하는데 이를 현주민들은 "빗돌 대왕"이라 한다.
이 빗돌은 군 작성상 철거를 하였더니 자주 사고가 나서 다시 제자리를 세우고 본래는 갓이 없었던 갓을 만들어 씌웠다.
이 빗돌 대왕은 본래 설마치 길가에 세워져 있어 오고가는 사람들이 비 뒤에서 남에게 보이지 않기때문에 용변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또 수령(守令)이 통과할 때도 이곳에 이르면 모두 하마(下馬)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감악산7개 부락에 소 가진 사람에게 한결같이 현몽하기를 흰옷 입은 노인이 나타나서 소를 하루 밤 빌려 달라고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마굿간의 소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으나 소의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빗돌 대왕도 감쪽같이 없어졌다.
후에 알아 보니 그 빗돌 대왕이 감악산 꼭대기에 서 있었다고 한다.
|
13 |
효자이야기 1 (옛날 이야기) |
15,810 |
|
12 |
뱀이 된 승려 (귀신 실화) |
3,863 |
|
11 |
산방산 (제주도) |
3,309 |
|
10 |
동백꽃 전설 (황해도) |
4,470 |
|
9 |
장군바위와 세무덤 (경북) |
3,703 |
|
8 |
말세우물 (충북괴산) |
3,901 |
|
7 |
변신경쟁 (옛날이야기) |
3,264 |
|
6 |
옛 여수와 종고산 |
4,027 |
|
5 |
장자 즉,부자와 중(경기도 파주) |
3,174 |
|
4 |
설인귀 (경기도) |
4,013 |
|
3 |
김생원과 의견총(義犬塚) (경북) |
3,099 |
|
2 |
송림사 (경북) |
3,227 |
|
1 |
용돌, (불암산전설) |
3,699 |
|
[ 1 ] |
|